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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겹치게 강의를 약속해 곤욕을 치렀다. 모 업체에서 몇 달 전 강의를 요청하면서 성사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해 당연히 안될 것으로 생각했고 다른 강의를 받은 것이다. 워낙 그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예상을 깨고 강의가 확정됐다. 결국 요청 받은 세 번 중 두 번은 해주고 나머지는 양해를 구해 일을 수습하긴 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싫었다. 빚쟁이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은 빚을 받겠다고 전화를 했고 나는 빚을 갚으려 동분서주한 셈이다. 괜한 약속으로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고 나 자신도 너무 불편했다.


이후 약속은 신중하게 하고 웬만한 일은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내키지 않는 강의 요청은 딱 잘랐다. 용건 없이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요청도 거절했다. 저녁에 하는 이런저런 모임도 대부분 거절했다. 그랬더니 자유가 오면서 마음에 평화가 왔다. 꽉 찬 달력대신 듬성듬성한 달력에서 기쁨을 느꼈다. 돌아다녀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다. 혼자 있으면 열불이 난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혼자만 있으면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약속은 나를 힘들게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긴다. 약속(約束)의 속은 ‘구속할 속’이다. 약속이 자유를 구속한다. 거절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고 거절해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거절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거절은 ‘정말 소중한 걸 하기 위해 덜 소중한 걸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장기적 성취를 위해 단기적 불편함을 감내하는 행위다. 내 시간도 소중히 여겨달라는 요청이다. 거절에 대해 김성회 소장은 이렇게 얘기한다.


“거절(拒絶)의 ‘거’는 손 수(手)와 클 거(巨)가 합쳐져 ‘막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글자다. 손에 거대한 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인생의 방해꾼, 장애물로부터 나를 오롯이 지키는 커다란 방어무기가 거절이다. 막을 것은 막고, 자를 것은 자르고, 미룰 것은 미룰 줄 아는 전략적 거절이야말로 진정한 개방이고 호의이다.” (코치칼럼-거절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中)


근데 거절은 쉽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하기 힘든 말이 거절의 말이다. 거절은 당하는 것도 힘들고 거절하는 것도 힘들다. 오마하의 현자라 불리는 워런 버핏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와 밥 한번 먹으려면 30억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데 거기서 그가 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거절의 중요성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거절을 잘해야 하고, 거절하는 것에 편안해져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걸 잘 따져보고 거절해야 한다. 무엇을 거절할 것인지 알아야 원치 않는 부름을 거절할 수 있다. 그게 행복의 본질이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자유롭다.’ 18세기 극작가 니콜라스 샹포르는 말했다. 이 능력은 자기성찰과 예스를 말하는 기술에 좌우된다. 자신의 개성, 자신의 가치를 향한 ‘예스’는 내키지 않은 승낙을 막아주는 최고의 방패이다. 그런 ‘예스’는 일상에 허덕이며 성급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행성이다. 직장이든, 사랑이든, 건강 문제든, 돈 문제든, 모든 결정은 자기 가치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한 예스는 자신을 향한 ‘노’이다. 남이 모욕할까 겁이 나 자신을 모욕한다.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을까 겁이나 남들 바퀴로 나를 밀어 넣는다. 자기 가치를 외면하는 건 자신을 무시하고 깎아 내리는 것과 같다. 확실한 노는 당신 가치를 높인다. 항상 긍정하고 승낙하는 사람의 긍정은 장마 때 물처럼 가치가 없다. 가뭄에 물이 귀하듯 거절을 해야 승낙의 가치가 높아진다. 노가 없으면 예스는 무력하다. 당신이 싫다고 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예스가 디폴트였는데 서서히 디폴트 값이 거절로 바뀌고 있다.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행복하다.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어 좋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