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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등학교 동기회에 갔을 때다. 어떤 친구들은 “너, 얼굴 많이 좋아졌다. 무슨 좋은 일 있니?”라고 물었고, 어떤 친구들은 “너, 얼굴 많이 상했다. 요즘 힘드니?”라고 물었다. 약 절반씩 그렇게 달랐던 걸로 기억된다. 우리는 자신의 필터로 세상을 본다. 이 필터에는 그 사람의 지식과 경험, 가치관과 신념 등이 저장되어 있다. 사람마다 이 필터가 다르다. 서로 필터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동기 몇 명과 부부 동반 식사를 할 때였다. 서로 자기 부부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한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 지금 누구 이야기 하는 거야?” 자기 아내가 말하는 자기 모습이 자기 생각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친구가 농담을 했다. “너희 부부는 좋겠다. 서로 다른 사람과 살고 있으니 얼마나 새롭겠냐?” 같이 사는 부부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이 말은 그냥 웃어넘기기엔 너무 묵직하다.

나는 코칭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즉각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든다. 그 사람의 나이가 40세든 50세든 관계가 없다.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의 40년, 50년 인생을 통째로 판단해 버린다.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코칭을 6회 했을 경우, 그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불과 6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6시간을 통해 그 사람을 통째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불교에선 있는 그대로 보는 걸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 한다. 여실지견하는 상태를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상태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말에 의문이 생긴다. ‘과연 나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본다는 건 내 지식과 경험의 필터로 해석한 것 아닌가? 내 판단과 해석을 수반하지 않고 무언가를 볼 수 있는가?’

오래전에,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을 면박 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건, 니 생각이지!’라고 말하면 어김없이 화를 냈다. 왜 그럴까? 내 생각이란 뭘까? 내 생각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걸까? 내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 경우엔, 자라면서 듣고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이 모여서 내 생각을 이루고 있다. 만약, 내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경험들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은 대단한 근거가 있거나, 요지부동의 불변이 아니다. 조금만 경험이 달라져도 바뀌어 버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그런데도 나는 그 생각을 움켜쥐고, 그 생각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따진다.

신심명(信心名)에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한 도를 이루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판단(간택)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최고의 행복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데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엔 시시비비가 저절로 올라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시비비가 즉각 올라온다. 다행히도 요즘엔 내가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때가 많다. 이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뭐지? 이렇게 판단하는 내 생각은 어디에서 왔지?’ 하면서 내 생각의 출처를 챙긴다. 그러면 내 생각이 그리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시시비비가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곤 생각한다. ‘이건 내 생각이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본 게 아니라, 내가 본 그 사람이지~’

사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내도 있는 그대로의 아내가 아니다. 내 생각으로 해석한, 내가 본 아내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아내와 살아가고 있다. 내 생각이 매일 바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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