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결혼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지는 건 무엇일까? 가족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40년 전 결혼식 때 처갓집 친척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구에서 버스가 두 대 이상 온 것 같다. 정말 가족만으로도 결혼식장이 꽉 찬 느낌이었다. 단출한 우리 집과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특히 큰 처남이 딱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늘 가정 대소사로 챙겨야 할 게 많았다. 서울내기인 난 시제라는 걸 난생처음 듣고 보았다. 모든 조상을 한꺼번에 제사 지내는 문중 행사인데 거기 참석하는 건 의무에 가까워 보였다. 장인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대구 근처에 모셨는데 벌초 등의 문제로 더 일이 많아졌다. 서울 근교에 모시면 될 걸 친척들의 강요로 고향 시골에 모셨는데 그러다 보니 챙겨야 할 게 더 늘었다. 친척들이 많고 친척들끼리 왕래가 잦으니 가족행사 하다 날이 샐 지경이었다. 특히 제사가 너무 많아 정말 죽은 사람 챙기려다 산 사람이 죽을 지경이었다.


반면 LG전자 출신인 내 친구 이우종의 경쟁력은 가족이 적은 것이다. 집안의 오버헤드가 적어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쓴 글의 일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전형적인 피난민 후손이다. 아버님은 6.25 전쟁 시 평양에서 피난 오신 분이다. 어머님은 서울 분이셨지만 두 분 모두 평안북도 출신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내 처도 개성 출신 피난민 후손이다. 피난민이다 보니 자연히 남한에는 친인척이 많지 않다. 함께 피난 온 형제자매들도 상당수가 이민을 선택했다. 아버님은 7남매의 장남인데 4명이 이민을 갔고 처가는 내 처를 제외한 6남매 모두 이민을 갔다. 게다가 우리 집과 처가 모두 기독교인이다. 제사 같은 대소사가 없어 집안의 오버헤드가 현저히 낮은 구조였는데 이게 내게는 엄청난 경쟁력이었다. 몇 안 되는 가족이 모인 신정 인사를 마치면 1월 2일부터 바로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소중한 노하우(?)를 자손에게도 물려주려 한다. 가능하면 집안 대소사로 그들의 경쟁력을 발목 잡는 일은 없도록 배려하려고 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결혼이란 무엇일까? 가족이 늘 좋기만 한 것일까? 결혼은 둘만의 결합이지만 사실 가족 간 결합이고 이로 인해 갑자기 챙겨야 할 사람, 신경 써야 할 사람이 더블로 늘어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적으로 보통 일이 아니다. 생일과 명절은 기본이고 그 외에 백일에 돌에 상갓집 등을 신경 쓰다 보면 정말 해야 할 일보다는 하면 좋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경영 용어로 오버헤드가 늘어나게 된다. 적자기업의 특징은 오버헤드 비중이 높고 그럼 이익을 내기 어렵다. 리소스는 제한적인데 오버헤드가 높으니 자신의 본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다. 가정도 비슷하다. 가정의 오버헤드가 높으면 집안일하느라 본업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다.


현재 당신 가정은 어떠한가? 가정의 오버헤드가 높은 편인가? 그렇다면 이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철저히 부모의 역할이다. 집안일 때문에 자손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한다. 가장 큰 건 부모들이 건강해야 한다. 그게 제일 우선이다. 부모가 아프거나 입원을 하면 그야말로 집안은 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다. 말로만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걸 넘어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다음은 경제적 독립이다. 다 잘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예산 범위 내에서 사는 건 가능하다.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자식에게 넘기는 순간 두 가족 모두 못살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은 쓸데없는 행사로 바쁜 그들을 구속하지 말아야 한다. 건강과 경제적 문제는 본인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마지막은 부모가 결정하면 얼마든지 자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결혼한 딸과 사위를 위해 몇 가지 변화를 주었다. 일단, 구정에서 신정으로 바꾸었다. 이중과세를 없애는 게 목적이다. 신정 점심에 떡국 한 그릇 먹고 세배 주고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제사는 오래전에 없앴다. 어버이날 행사 같은 건 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노상 보고 밥 먹고 얼굴 보는데 이런 날을 또 만들어 부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바쁘다. 자식들이 너무 자주 오는 게 내게는 큰 부담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 거기에 따라 가족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 핵심은 따로 또 같이 지내는 것이다. 바쁜 세상에 따로따로 열심히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러다 가끔 만나 뜨겁고 화목한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다. 여러분 가정은 어떠한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