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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은 특별히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빼고는 다들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외에는 비행기를 오래 타야 하는데, 장시간 비행은 어떤가?


한때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비행기를 탔다. 해외 사업을 담당하느라 온 세계를 헤집고 다녔기 때문인데 덕분에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방문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 좋았지만, 비행기를 오래 타는 일은 늘 힘들었다.


특히 10시간이 넘는 비행 스케줄은 온몸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회사의 배려로 4시간이 넘는 출장지는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로 좌석이 업그레이드되었지만 그래도 갇힌 공간에서의 10시간은 나에게는 피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눈앞의 현실이었다. 그러니 해외 출장의 아킬레스건은 항상 장거리 비행이었고, 시차 문제까지 겹쳐 해외 출장을 한번 다녀오면 몸이 엉망이 되곤 했다. 그런데 우연히 내게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 은인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대여섯 시간을 보냈을 즈음 온몸을 뒤틀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옆 좌석의 점잖은 중년의 신사분이 말을 걸어왔다. “많이 힘드신 모양이죠?”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비행기 안이 제일 좋아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솔깃한 마음에 “아니? 무슨 비법이라도 있으신가요?”라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이 바로 “뒤집어서 생각해 보라”였다.


말씀인즉, 자기도 수없이 장거리 비행을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피할 수 없는 장거리 비행의 불편함을 생각하기 보다, 자신에게 주는 이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궁극적인 깨달음이 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상에서 10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이 시간이라고 생각을 바꾸니 장거리 비행이 ‘축복의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분 말씀의 요지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였다. 그러고 보니 그분이 비행기 안에서 하신 여러 행동들이 여유가 있고 편안해 보였다. 나는 한편의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도 지겨워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데, 그분은 지긋이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영화를 끝까지 보셨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기내식을 먹을 때도 천천히 즐기면서 드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나하고 똑같은 행위를 하는데, 뭔가 달랐다.


옛날의 바쁜 일상을 회상해 보면 그때는 ‘참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런 한 편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하기 싫은 일도 꽤 있었던 것 같다. 누가 얘기하지 않았든가? 하고 싶은 일은 옆에서 말려도 열심히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잘하는 것이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그 하기 싫은 일에 대해 마음을 바꿔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겁게 일했다는 것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은퇴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변했다. 치열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즐기면서 살려고 한다. 그래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에서 지금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kdaehee@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