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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서 수석을 차지한 아이들 인터뷰는 천편일률적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 배운 걸 복습하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등등... 특별한 게 하나도 없다. 시시하고 재미없다. 뻔한 얘기만 한다. 근데 그건 거짓이 아닌 사실이다. 그만큼 특별한 것이 없다. 행복도 그렇지 않을까? 행복을 위해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할까?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할까? 행복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이 방법을 몰라서 행복하지 않을까? 난 동의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게 행복이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키워드는 일상이다. 일상이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다. 행복을 위한 그 무엇, 섬씽은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끝내주는 일이 있어 행복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그 자체가 행복이다. 끝내주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이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은 물 건너간 것이다. 일상이 아닌 곳에서 행복을 찾는 건 연목구어다.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는 것처럼 주소가 잘못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다. 종교도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종교는 일상에서 종교를 구현하는 것이다. 일상은 엉터리로 하면서 일요일에만 신성하게 지내는 건 뭔가 이상하다. 운동도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운동은 시간 내어 운동하는 걸 넘어선다.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운동하는 것이 진짜 운동이다. 차를 버리고 웬만한 거리를 걷는 것, 틈만 나면 스트레칭을 하는 것, 기다리는 시간에 짬짬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시인들은 그런 일상의 행복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시인 나태주의 행복이란 시다. 철저하게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얘기한다. 하나도 특별할 게 없다. 누구나 집이 있고 생각할 사람이 있고 부를 노래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중략)” 신달자 시인의 ‘여보, 비가 와요’란 시다. 집에서 늘 아내와 늘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얘기다. ‘밥 먹었어? 오늘은 뭐 먹을까? 여보, 오늘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나가요’ 늘 주고받는 말들이다.


한 번도 그 말을 주고받으면서 행복하단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나 혼자 남았을 때 사소한 언어의 소중함을 느꼈다. 비가 오니 비가 온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 국이 싱거운데 그 말을 나눌 사람이 없다. ‘오늘 뭐해’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옆에 아무도 없다. 행복은 일상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이다.


어떤 스님이 진리를 가르쳐 달라면서 조주선사를 찾아왔다. 그는 뭔가 끝내주는 한 마디를 기대했다. 근데 기대와 달리 조주선사는 ‘밥은 먹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예, 밥은 먹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럼, 그릇을 씻어라.’라고 말했다. 그게 전부다. ‘원 참 세상에’ 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진리는 뭔가 끝내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건 조작이다. 이 세상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밥을 먹는 것, 밥을 먹은 후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씻는 것 그게 깨달음이다. 구체적 일상이 중요하다. 행복도 그렇다.


로빈A. 쉬어러의 『더 이상 우울한 월요일은 없다』(2001)에 보면 일상에 영혼을 불어넣는 16가지 방법이 있다. 인생을 단순화하자. 이 정도면 만족하겠다는 한계를 정하자.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라. 위대한 자연을 경험하라.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라.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라. 기도나 명상을 하라. 영감을 주는 문학작품이나 테이프를 보고 들어라. 자기 계발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가슴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라.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불러라, 아니면 춤을 추어라. 고결하게 행동하라. 정기적으로 일기를 써라. 어디에 있더라도 즐긴다는 자세를 가져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라.


지금 행복하지 못 한가? 불행한가? 혹시 불행한 이유를 남에게 돌리고 있는 건 아닌가? 행복은 일상이다. 행복하고 싶으면 일상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행복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