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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기자 생활 때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서 스테파니 윈스턴이란 유명한 ‘오거나이저(organizer)’가 내한 기자회견을 한다는 보도자료가 왔는데 국내 유수의 언론기관에서 정치부 기자를 보냈다. 오거나이저를 조직 전문가라 해석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는 업무·시간관리 분야 경영 컨설턴트였다.


임원 코칭을 하면 그때의 웃픈 해프닝이 자꾸 떠오른다. 리더십에서 오거나이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록새록 실감하게 되어서다. 사람, 일, 시간의 조직화는 리더십의 처음이자 끝이다. 늘 일은 많고 시간과 인력은 부족하다. 세상에 바쁘지 않은 리더는 없다. 바쁘지 않게 조직의 작동 시스템을 만드는 게 탁월한 리더십이고 이는 동서고금 다르지 않다. 성과를 내는 리더는 바쁜 리더도, 잘난 리더도, 성실한 리더도 아닌 조직화를 잘하는 리더다.


한비자는 리더의 등급을 정해 ”삼류 리더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일하고 이류 리더는 부하의 힘으로 일하고, 일류 리더는 부하의 지혜까지 동원해 일한다“라고 말한다. 즉 일과 사람에 따라 넘길 건 넘기고 집중할 것에 집중해야 동기부여도 되고, 조직도 쌩쌩하게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일의 성격에 따라 버릴 일, 넘길 일, 직접 할 일, 긴 시간 끈질기게 매달릴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어긋났을 때 일류 리더는커녕 원점 회귀, 아니 지하실 밑으로 떨어져 업무 과부하로 허덕이는 4류 리더로 연결된다.


리더여, 불도저보다 오거나이저가 되자

다시 오거나이저 스테파니 윈스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가 제시한 오거나이징의 법칙 중 인상 깊은 것은 버-전-처-파였다. 버릴 것은 버리고 전달할 것은 전달하고, 처리할 것은 당장 처리하고,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은 파일링 해 추적하라는 조언인데 ‘시간관리를 보면 리더십이 보인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버릴 것은 무엇인가: 버려야 집중할 공간이 생긴다. 옷장이 가득 찼는데 새 옷을 들여올 수는 없다.


-전달할 것은 무엇인가: 조직 총량의 법칙을 명심하라. 리더가 직원의 일을 할수록 직원은 수수방관하게 된다. 책임과 권한을 알맞은 사람에게 넘겨 위임하라. 리더가 생산성을 높이는 비결은 ‘나누기’를 잘하는 것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신속한 의사결정과 조급한 의사결정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원칙과 기준의 유무다. 원칙을 세워놓으면 판단이 빨라진다.


-파일링 해 장기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기 성과에 치우치다 보면 장기 목표를 놓치게 된다. 데일리 투두 리스트 완료로 성과 달성이란 착시현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파일링 관리를 하며 불독같이 매달리는 끈기가 필요하다.


공자는 제자 자하(子夏)가 거보라는 고을의 태수가 되어 신임 리더로서 명심할 사항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급히 서두르지 말고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 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고(欲速不達), 작은 것에 매달리다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欲巧反拙)“. 욕속부달은 단기성과에 매몰되지 말라, 욕교반졸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지 말란 이야기다.


늘 일은 넘치고 사람은 부족한 피로사회에 필요한 리더 스타일은 불도저보다 오거나이저다. 리더여, 버-전-처-파,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blizzard88@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