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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할 때가 있다.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고 별다른 이유 없이 불안할 때도 있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가진 것을 잃지 않을까, 투자한 것이 잘못되지 않을까, 원하는 대로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어쩌지, 나와 주변에 닥칠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도 있고 회사를 다닐 땐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에 불안을 느끼곤 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특히 불안함을 느낀다. 대표적인 건 장남으로서, 사위로서의 역할이다. 어머니와 장모님은 혼자 사시는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아뵙고, 식사도 대접하고, 용돈도 드리고, 얘기도 듣는다. 그러다 바쁜 일정 때문에 뵙지 못하면 불안하고 불편하다. 누가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그런 상황이 불편해 무리를 해서라도 두 분을 방문한다. 사실 가서 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다녀온 후에는 마음의 평화가 온다.


남들은 그런 우리 부부를 보고 효도를 한다고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난 효도를 한 게 아니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불안의 제1원인은 해야 할 걸 하지 않는 것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공부 대신 영화를 볼 때, 영업사원이 물건 파는 대신 북한산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운동하겠다고 결심만 하고 실행하지 않을 때,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내가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해야 할 걸 빨리빨리 해치우는 것이다. 몸을 뭉개는 대신 떨치고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해야 할 게 머릿속에 있으면 개운하지가 않다. 그래서 뭐든 할 건 재빨리 한다. 차의 휘발유는 미리미리 꽉 채운다. 반쯤 있어도 채운다. 그럼 기분이 좋다. 세금이나 공과금 같은 건 받는 순간 바로 낸다. 그럼 마음이 홀가분하다. 미룬다고 깎아주는 것도 아닌데 미룰 이유가 없다. 내지 않은 세금은 계속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내야 하는데 아깝다. 좀 기다려볼까?’ 이런 생각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금에 대한 부담은 내는 순간 사라진다. 아깝다는 생각도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대신 얻는 게 있다. 마음의 평화가 그것이다. 그래서 가끔 언론에 나오는 고액 세금 체납자를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든다. 강제로 세금을 받으러 간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몇 년씩 세금을 내지 않고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지 정말 궁금하다. 불편하지 않았다면 양심이 없는 것이고, 불편한 마음을 참았다면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안하면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마음의 평화는 그냥 오는 게 아니다. 많은 노력과 비용을 치러야 하고 그 결과물로 오는 것이다. “건강은 최상의 이익, 만족은 최상의 재산, 신뢰는 최상의 인연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법구경에 나온 말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