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군인 출신 아버지는 내성적이고 침착하고 깔끔한 성격이셨다. 군인정신이 몸에 뱄고 정리 정돈, 모든 물건은 제 자리에, 늘 주변을 청결하게, 주무실 때도 차려 자세로 주무셨다. 말도 많지 않고, 낯을 많이 가렸다. 어머니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활달하고 외향적이고 대인관계가 좋다. 씩씩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집에 돌아오실 때는 100미터 전방부터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온 동네 참견을 다 하는 스타일이다. 근데 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멀다. 옷도 아무 데나, 지갑도 여기저기, 그러다 보니 외출할 때마다 뭔가를 찾느라 정신을 쏙 빼놓았다. 아버지에겐 잘 했지만 급한 말 때문에 자주 다투셨다. 급한 성격에 화가 나면 그걸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했다. 그러다 보면 별일 아닌 일이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한 템포만 쉬었으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었다. 어린 시절 그게 싫었다.


근데 나 역시 그런 어머니를 닮아 성격이 급하고 덜렁거린다. 잃어버리기 선수다. 늘 무언가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말을 할 때도 상대를 잘 배려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얘기는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성향으로 보면 나 역시 자주 싸워야 할 것 같은데 결혼생활 40년 동안 싸워본 기억이 없다.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00% 아내의 공이다. 아내의 지혜로운 처신 덕분이다. 아내는 말에 관한 한 스승이다. 언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지금이 말을 해야 할 순간인지 아닌지 잘 안다.


아내의 주특기는 한 템포 쉬기다. 아내는 그걸 잘 한다. 타고난 성향인 듯싶다.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재향아, 너는 말하기 전에 꼭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구나. 참 좋은 습관이다.” 화가 나도 절대 쏘아붙이지 않는다. 내게도 그렇고, 자식들에게도 그렇다. 한 템포 쉬고 그다음 날 얘기하든지, 아니면 며칠 지난 후 얘기한다. 그때쯤 되면 서로 온전한 정신에 얘기를 할 수 있다. 싸움으로 번질 일이 없다. 그 덕분에 부부 싸움 없이 잘 지내왔다. 만약 퍼붓는 여자와 살았으면 이미 이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분은 어떤 스타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털어놓는가?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가? 혹시 그러고 본인은 ‘뒤끝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곧 말인 사람이 있다. 뭔가 생각나면 바로 따진다. 그걸 똑똑한 걸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본인 기분은 풀릴지 몰라도 상대는 중상을 입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걸 헛똑똑이라고 부른다. 본인은 뒤끝이 없을지 몰라도 말의 폭격을 받은 사람의 상처는 영원히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재앙은 입에서 비롯된다. 말을 안 해서 후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기 때문에 오는 비극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하기 전에는 한 템포 쉬며 생각하는 게 좋다. 그것만 해도 실수의 확률이 줄어든다. 생각나는 대로 대응하면 대개 얻는 거 없이 일만 키우기 쉽다. 화가 나거나 감정적으로 흥분했을 때 특히 그렇다. 말의 목적이 싸움은 아니다. 하지만 싸움은 늘 그런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럴 때는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 현명하다. 뭔가 따지고 싶을 때 한 템포만 쉬어도 싸움은 줄어들고 영혼도 맑아질 것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