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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면 늘 사람들은 한 해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독서”입니다. 올해는 반드시 책을 많이 읽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참 작심삼일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독서가 좋다는 것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야심 차게 책을 펼쳤는데 어느새 책은 허벅지를 데우는 담요로 전락하고 내 눈과 손은 핸드폰을 향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싶지만 읽기가 쉽지 않은 우리,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님의 〈정신과 의사의 서재〉(2020)에서 책 읽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봅니다.


“항상 바빠 보이시는데, 책은 언제 보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약간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솔직히 많이 읽는 편이기는 하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책, 그냥 보고 싶어서 읽는 책, 호기심에 들춰보는 책, 시리즈 신간이 나와서 의무감에 보는 책까지 내가 책을 읽을 이유는 많다. 책을 언제 보느냐는 이 질문에 나는 단순하게 ‘언제 어디서나’라고 대답하고 싶다. 책 읽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공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대신에 내 생활 패턴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읽기 좋은 책을 깔아 놓는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알맞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세팅’을 해놓는 것이다.(중략) 이렇게 배치해놓으면 언제 어디서든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을 수 있다. 적절한 책을 미끼같이 투척해놓는 것이 다독의 길에서는 필수사항이다.


이 부분을 발췌한 이유는 제가 책을 읽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 해 제가 읽은 책을 쭉 세어봤더니 대략 100여권 정도 읽었고 책 서평은 70권 정도 적었네요. 스스로가 약간의 활자 중독자로서 모습이 있긴 하지만 다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손닿는 곳에 책이 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머무르는 모든 곳에 책이 있습니다. 책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경우 또는 베스트셀러인데 선뜻 사고 싶지는 않은 책이라든가 읽기 가벼운 책들은 전자도서관 자료를 이용합니다.


재미있는 책은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리기도 하고, 어려운 책이나 진료실 옆에 꽂혀 있는 책은 오래 그 자리를 지키기도 하지만 대개 1주일에 한 번씩은 새 책으로 교체를 합니다. 하지현 교수님은 한 달에 한 번 대량으로 책을 구매한 뒤 쌓아놓고 배치하고 읽으신다는데, 저는 책의 “신선도”를 중시해서 읽고 싶은 책을 한 번에 하나씩 구매해서 새 책의 신선도가 사라지기 전에 대부분 읽는다는 게 차이입니다.


사람의 의지를 넘어서는 것은 시스템입니다. 의지라는 것은 매우 강력하기도 하지만 또 매우 나약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지에 의존한 계획은 대개 좌절을 남기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의지를 시스템으로 전환해두면 유지하기가 수월해집니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핸드폰을 보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은 뇌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힘든데 책을 고르고 펴는 과정까지가 번거롭다면 대부분 책을 읽을 의지를 상실해버리겠지요. 그래서 책을 곳곳에 둡니다. 내가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기 전에 바로 집어 들 수 있게 말입니다.


우리를 지난 몇 년간 괴롭히던 코로나는 끝났지만 올해도 여러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려운 시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의 저장고는 아무리 많은 매체가 쏟아져 나온다 해도 결국은 “책”입니다. 책이란 정보와 지식도 주지만 무엇보다도 시선을 바꾸어줍니다. 나의 세계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더 넓고 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시선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새해의 시작, 책과 함께 해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athy2112@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