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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oaching Letter From CMI
사생활 관련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착각이 그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우를 받으며 여유 있게 뭔가를 해야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런 조건에서 일 잘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는 배울 게 없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고난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특히 리더십이나 인간관계는 그러하다. 주변에 갈등을 일으키고 내 속을 뒤집는 그런 인간이 있어야 사람은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 회사에서의 일이다. 당시 난 연구소에 있다 생산부서로 발령을 받아 도장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른 건 그런대로 할 만 했는데 다루기 어려운 대의원 때문에 힘이 들었다. 그 친구는 말이 통하지 않는 꼴통 중 꼴통이었다. 별명도 언터처블이었다.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아무도 그 친구를 건드리지 않았고 그는 현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관리자들은 대부분 “무서워서 피하느냐, 더러워서 피하지”하면서 말조차 걸지 않았다. 근무시간 중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내가 그를 깨우자 불같이 화를 내며 라인을 세우는 바람에 담당 임원에게 끌려가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친구는 매일 현장 안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파업 중이 아닌 데도 각종 슬로건이 쓰인 조끼와 머리띠를 하고 다녔다. 내 책상 맞은 편에 앉아 구호를 외치곤 했다. 매일 와서 부리는 난동도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으레 그러려니 했다. 근데 인간이란 존재는 참 이상하다. 그런 진상하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드는 것이다. 가끔 안 보이면 내가 먼저 그 친구 안부를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그 친구의 주요 관심사는 도장공장 환경문제였다. 도장용제(일명 솔벤트) 냄새가 심해 작업에 지장이 있으니 이를 없애달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미 엄청난 돈을 들여 환기시설을 했고 냄새도 별로 나지 않았다. 무리한 요구였다. 난 더 이상 냄새를 없앨 수는 없다라고 얘기를 했다. 이미 그렇게 투자를 했는데 어떻게 더 이상 돈을 쓰는가 라며 그를 설득하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제 코가 개코라 그렇습니다. 제가 냄새에 아주 민감하거든요. 그러니 완벽하게 없애주세요”라고 말했다. 듣다 못한 난 “자넨, 도장공장에 맞질 않으니 냄새가 안 나는 조립이나 차체공장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더니 한 마디로 거절했다. 자신은 도장공장이 정이 들어 다른 부서는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난 “도장공장에서 용제냄새를 없애달라는 건 생선가게에서 비린내를 없애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주장했다. 그 친구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그건 한 박사님 사정이고,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정말 그 인간이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사무실에 둘만 남게 되었다. 심심했던 난 그 친구에게 본관이 어디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답을 안 했다. 그래도 내가 자꾸 캐묻자 “광산 김”씨라고 말했다. 난 귀를 의심했다. 양반 중 양반이고 명문 성씨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란 내가 “자네, 김우중 회장님이 광산 김씨인 것 아나?”라고 묻자 "압니다." 라고 답했다. 이어 “자네, 도올 김용옥이 광산 김씨인 것 아나?”라고 묻자 그 또한 안다고 답했다. 그래서 “자네 아버지가 자네 이러는 것 아나?”라고 묻자 가만히 있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내가 아버지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왜 아버지 전화번호를 알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도대체 광산 김씨 집안에서 어떻게 너같이 무례하고 경우 없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지 당신 아버지와 상의 좀 해 보겠다고 했다. 그 친구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걸로 상황종료였다. 근데 현장에서 자꾸 이상한 소문이 들리는 것이다. 그 친구가 변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파업투표를 하면 제일 앞장 서서 선동을 했는데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후퇴를 하자, 지금은 파업할 때가 아니다, 명분이 부족하다 하면서 파업을 자제시켰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회사에 우호적인 행동을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친구는 점차 협조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고마웠던 난 몇 달 후 그 친구와 밥을 먹으며 왜 그렇게 사람이 변했는지 물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전 매우 보수적인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근데 이 회사 와서 나쁜 물이 들었지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늘 이건 아니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박사님이 광산 김씨 운운하며 집안을 들추니까 순간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 이상 조상님 이름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지요. 노조활동을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하려구요.” 

난 이 사건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건 존중심이란 사실을 배웠다. 야단치고 잔소리해도 바뀌지 않았던 그 친구가 그렇게 바뀐다는 사실을 보고 내심 크게 놀랐다. 이후 부하직원들의 장점을 찾아 그걸 자극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변엔 늘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 사건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저 인간만 사라져주면 행복할텐데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렇지 않다. 사실 그 인간이 스승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를 못 살게 구는 것이 사실은 나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적이 친구보다 소중하다. 적은 친구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꼴통은 스승이다. 아니 스승이 될 수 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