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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oaching Letter From CMI
 
   
사이 임원들과 코칭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보는 모습은 자신이 맡은 일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 그것을 너무 힘들어 하면서 자책을 하는 것이다. 하기야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같은 경험을 한 나로서도 공감이 된다.

문제는 그들의 삶은 고달프다는 것이다. 조금의 허점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스스로를 달달 볶는다.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질책한다. 완벽을 향한 집착은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이다. 지나온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조금만 더 잘 했으면 좋았을 걸’, ‘왜 이 정도밖에 못 했을까 하고 자신을 고문하고 채찍질한다.

일을 대충하고 편한 목표를 세워 조금만 일하고 멈추어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현재 이룬 성과의 긍정적 측면과 부족한 점을 함께 보는 것이다. 잘 해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만족하고 기뻐하되, 다소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을 기약할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장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완벽주의자는 현재의 성과를 거부하고, 목표만을 바라본다. 그렇게 되면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 그 여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느껴볼 여유가 없다. 때로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집착한다. 그러니 얼마나 숨이 차겠는가. 어차피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으니 숱한 좌절감에 휩싸이는 날이 잦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태리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역시 완벽주의자였지만 그는 좀 달랐다. 그가 80세 되던 1893년에 작곡한 최후의 오페라 ‘팔 스타프’를 본 관객이 베르디에게 물었다. “선생님을 19세기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고, 이미 누구나가 다 알아 주는 유명인이 되셨는데 왜 이 아직까지 그 어려운 작곡에 매달려 고생을 하시는 겁니까?" 베르디는 웃으며 대답했다. 

“음악가로서 평생 저는 완벽을 추구했습니다. 언제나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것을 다음을 위한 에너지로 삼으며 완벽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베르디 역시 완벽을 위해 노력을 한 음악가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과정을 즐겼고, 아쉬운 부분을 즐거운 숙제로 받아들였다.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다음을 기약하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독하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기 않겠는가. 하지만 조급하고 눈앞에만 연연하는 완벽주의자의 가슴에는 다음을 기약하며 비워두는 그런 여백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한 완벽주의자보다 행복한 최적주의자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썩 괜찮은 선택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떨까? 

*나는 완벽주의자인가? 최적주의자인가?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여유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게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렇게 함께 외쳐보자. 
‘그래 좀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해, 나 참 능력 있고 괜찮은 사람이야’ 

* 칼럼에 대한 회신은sycho@eklc.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