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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에 코칭 세계에 입문한, 그야말로 초보 코치다. 그러나 그 반년은 충격의 시간이었으며 좋게 말하면 ‘개안(開眼)의 나날’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기자로 살았다. 기자의 일은 단순히 말하면 4 요소로 구성된다. 묻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이다. 밥벌이 수단이 언어였고, 언어 다루는 일이 낯설지 않다는 뜻이다. 코칭의 주된 도구도 언어다. 그런데 기자 경험이 코칭 세계에선 별 도움 안 되는 것 같다. 기자의 언어와 코칭의 그것이 너무 달라서 하는 말이다.


기자는 '견고한 사실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실재하는 실체·현상을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Mirroring)하여 제 3자에게 전달하는, 그런 언어를 다루는 것을 생업으로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지금 어떠한지가 주된 관심사다. 그의 눈은 대개 과거와 현재를 향해 있다.


생각을 여는 문고리, 코칭 언어

하지만 코칭 세계에서 언어의 쓰임은 아주 달랐다. 미러링 대상이 바깥의 우수마발이 아니라 ‘고객의 말’이다. 시선은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고객의 당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기며 '고객이 자기 내면 깊숙한 곳을 되돌아보게 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언어가 문고리가 되어 사람의 생각을 열어젖히고, 전환시키고, 결단케 한다.


대화의 구조도 달랐다. 코치는 '고객이 방금 한 말'과 연결된 짧은 질문을 조곤조곤 던질 뿐이다. 그럼에도 잘 선택된 질문이라면 대화가 진행되면서 고객은 자기 마음의 근저를 발견하게 된다. 고객이 주도하여 주제를 선택하고, 목표를 세우며,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실천을 결심한다. 주고받는 언어가 역동의 방아쇠요 변화의 장약(裝藥)으로 작동하는 곳이다. 물론 코치의 말에는 사실(fact) 및 구체성이 부족해 쥐어짜면 건더기가 남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종내 사람 자체를 바꾼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던 중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판타지 영화 ‘나니아 연대기’였다. 영화 속 소년소녀가 골방의 옷장 문을 열자, 어라! 사자와 마녀가 지배권을 다투는 신비의 나라 나니아가 펼쳐졌다. 필자가 코칭의 문을 열었더니 실체 없는 언어가 가공할 위력을 발하는 또 하나의 낯선 세상이 전개됐듯이….


코칭이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고? 그렇다. 내가 경험하고 있다. 경청 반영하고 존중 인정하며, 공감 공명하자는 코칭의 대기에 노출돼 조금씩 호흡하면서 가족과의 관계가 바뀌고 있어 하는 말이다. 15년 전 대화가 끊어졌다가, 7~8년 전부터는 용무가 있을 때만 필요한 말을 주고받아온 아들이 있다. 그와의 대화가 복원된 것이다. 여기서 그 과정을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오직 코칭 덕분이다. 셀프코칭의 힘이 컸다. 애비가 바뀌니 부자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이며, 문제는 애비 쪽이었다는 얘기다. 부끄럽다. 그러나 경이로운 경험이며 벅찬 기쁨이다. 코칭이 준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다.


먼저 코치부터 되라니까

한국코치협회 제정 '코칭역량해설'은 전체 8장 중 앞의 4개 장을 '코치다움'에 대해, 뒤쪽 4개 장을 '코칭다움'에 대해 각각 쓰고 있다. 전·후반부 간 분량도 거의 같다. 비유하자면 의과대학 6년 과정 중 3년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그후 3년간 의술을 가르치는 꼴이다. 코치라는 사람들이 코치다움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코칭이 탄생한 것은 고객을 돕기 위해서다. 빠른 속도로 확산된 것은 그 도움이 크다는 사실이 널리 입증됐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그에 앞서 새삼 다짐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다. 코치가 된다는 것은 고객에 앞서 코치 자신에게 더 도움 되며, 더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 말이다. 나아가, 진정한 코치가 되고 온전한 코칭이 되기 위해서는 코치 안에서 먼저 변성(變性)이 일어나야 한다. 석회석이 대리암 되듯 탄소가 금강석 되듯, 개안을 넘어 개심(開心)으로….


주장이 턱 없이 생경하고 겁 없이 당돌한가? 인정한다. 그래서 반년 짜리 초보 코치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tigera1@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