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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이 고3 때, 우리 가족의 팀워크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가족이 똘똘 뭉친 느낌이었다. 일단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알아서 주말에 학원에 태워다 주고, 필요한 정보를 바로바로 소통했고, 집안의 스케줄이 한방향으로 정렬되었다. 휴가는 포기하고 아들이 고른 맛집 투어로 대체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었으며 자발적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최우선 순위가 분명했고, 자연스럽게 몰입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 해에 직장을 그만두는 큰 일이 있었지만, 행여 아들 마음이 심란할까 봐 수리논술시험이 끝나는 두 달 동안 비밀에 부치기까지 했다. 분위기가 그렇게 잡혀서인지, 아들은 괜히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한참 뒤에서야, 그 와중에 여자친구도 사귀고 게임도 하면서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긴 나름 숨 쉴 구멍이 있어야지.


외국인들이 보면 미친 짓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그런 풍경에 공감할 것이다. 입시 시기에 사소한 불평은 잠재워졌고 잔소리도 줄었다. 남의 집을 부러워하거나 비교도 하지 않았다. 집안에 큰 일이 있으면 그런 팀워크가 만들어진다. 내 친구는 시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을 때 온 식구가 단결했다. 종종 시댁 불평을 하던 친구가 군말 없이 조를 짜서 간호에 나서고, 온갖 정보를 모아서 소통하고, 스케줄을 다 거기에 맞추었다. 다행히 시아버님이 회복되셔서 일가가 모두 함께 좋아했는데, 그렇게 위기가 끝나자 다시 그들의 사이는 벌어졌다. 하하하… 간혹 정치사에서 국내 문제가 심각할 때 전쟁을 일으켜 외부의 적으로 화살을 돌리는 일이 있는데 그게 이해가 될 지경이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될 적이 생기니 내부 팀워크가 강화되는 것이다.


위기 앞에서 빛을 발하는 팀워크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가 처음 사회를 휩쓸었을 때 국민들이 보여준 자발적인 방역 노력도 그런 면이 있다. 서로 비난하기보다는 일치단결하고 규칙을 따랐고,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의 헌신에 감동을 받았다. K방역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큰일 났다고 호들갑 떠는 걸 태생적으로 싫어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주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직도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불어넣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기의식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우리 가족도 입시가 끝나자 평소처럼 서로에게 약간 무심한 상태로 돌아갔다. 방 청소를 안 했거나 재활용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은 것 같은 일이 다시 중대한 이슈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코로나 유행 기간이 2년을 넘으니 일상이 되어 버렸다.


유능한 스포츠 팀 감독은 선수들에게 그냥 최선을 다하라고 하지 않는다. “00팀을 쳐부수자”거나 “마지막 3승에 전부를 걸어라!”라는 식으로 긴장감을 불어넣고 몰입할 목표를 제시한다. 몰입이 없으면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수완 좋은 리더들은 이런 걸 잘하는 것 같다. 밀고 당기는, 밀당 능력이라고나 할까.


위기가 없을 때 가족은 무엇으로 뭉치는 걸까? 젊은 친구에게 물었더니 자기 가족은 여행 계획 짤 때 제일 잘 뭉친다고 한다. 다들 신나서 의논하고, 자녀가 논의를 주도한다. 계획을 짜고 대화도 활발하고, 서로 역할을 나눈다. 다른 한 친구는 본가 부모님 댁을 이사할 때 결혼한 형제들의 팀워크를 경험했다고 한다. 집을 팔고 사고 대출을 받고, 하는 문제들을 서로 나서서 알아보고 각자 역할분담을 하고 등등 완전한 협력이 이루어졌다. 자녀들이 리드하도록 부모님이 한발 물러나서,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다는 거다. 책임감이 강했을 것 같다. 이렇게 팀워크도 변화하고 리더십도 변화한다. 가족 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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