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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DINK족이 유행했다. 결혼도 선택, 자식도 선택, 일하는 것도 선택, 일 안 하는 것도 선택이니 무엇이 옳다 그르다 얘기할 성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를 낳는 것이 좋은지, 낳지 않는 것이 좋은지는 결혼만큼이나 아니 결혼보다 중요한 의사결정임에는 틀림없다. 내 결론은 애는 낳는 게 낫다는 것이다.


첫째, 내 애를 낳아 기른다는 건 말도 못할 기쁨이고 축복이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무엇인가? 난 좋은 아내와 결혼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 둘을 낳아 잘 기른 것이다. 애는 애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애가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나 역시 변화하고 성장하는 걸 느낀다. 그들이 없었으면 늘 그 자리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자식을 낳으면서 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둘째, 애를 키우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다. 육아는 극한 체험이다. 그 어떤 노동보다 강도가 세다. 자기 희생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육아는 나를 버리는 과정이다. 아니 버릴 수밖에 없다. 아기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힘들다고 애가 봐주는 것도 아니다. 근데 그 과정에서 내가 성장한다. 내가 생각하는 육아(育兒)의 재정의는 育我다. 아기를 돌보는 거 같지만 사실은 나를 돌보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아이를 길러봐야 어른이 된다는 건 진리 중 진리다. 아이를 키우면서 뜨거운 맛을 봐야 성장할 수 있다.


셋째, 아기를 낳고 길러봐야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둘만 하는 사랑을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관련해 시각장애인 출신 애널리스트인 신순규씨 얘기가 도움이 된다. 그가 쓴 책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중 일부를 인용한다. “사랑은 둘이 하는 거라고 많은 사람이 믿는다. 그래서 연애도 둘이 하고, 결혼도 둘이 한다. 하지만 우리는 참사랑, 정말 찐하게 사랑하려면 적어도 셋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둘의 사랑에서 비롯된 아이, 혹은 아이들을 같이 사랑하며 키울 때, 사랑에서 비롯되는 기쁨, 아픔, 즐거움, 슬픔을 다 맛볼 수 있으니까.” 쓴 맛을 본 사람만이 단맛을 알 수 있다.


육아는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걸 시인 박성우가 쓴 유랑에서 엿볼 수 있다. “백일도 안 된 어린 것을 밥알처럼 떼어 처가로 보냈다. 아내는 서울 금천구 은행나무골목에서 밥벌이를 한다. 가장인 나는 전라도 전주 경기전 뒷길에서 밥벌이한다. 한 주일 두 주일 만에 만나 뜨겁고 진 밥알처럼 엉겨 붙어 잔다.” 육아의 고달픔을 느끼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아이를 밥알처럼 떼어야 하는 아픔이 느껴진다. 그래도 온 가족이 한 주나 두 주 만에 만나면 아주 뜨겁고 진득한 밥알처럼 엉겨 붙어 잔다는 것이다. 애가 없으면 절대 맛볼 수 없는 감정이다.


애는 나를 힘들게 한다. 내 커리어에 큰 손상을 준다. 돈도 너무 많이 든다. 그렇다고 애가 꼭 잘 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그래서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를 낳아야 하는 이유는 그 아이 덕분에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애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애가 나를 키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익희가 쓴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에 나오는 아이 관련 얘기를 소개한다. “육아는 고비용 고수익활동이다. 아이는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정서적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다. 육아는 힘겨워도 부모는 아이 덕에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초월적 경험을 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겪으면서 비로소 부모가 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아이가 부모를 키우는 것이다.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애 낳는 것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는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